| [답변][답변][답변]집단 매너리즘의 굴레에 대하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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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면○ | 작성일 | 2004-10-06 |
| 조회 | 1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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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인물=김삿갓님 집안내력 참조하세요.
詩仙 (시선) 김 삿 갓 선생은 안동 김씨의 시조인 고려 개국공신 宣平(선평)의 후예로 조부는 선천부사 益淳(익순)이고 父 安根(안근)과 母 함평 李氏 사이의 2남이다. 순조 7년(1807년) 3월13일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출생하였고 名은 炳淵 (병연)子는 性深(성심),號(호)는 蘭皐(난고)이고, 笠(립)은 俗稱(속칭)이다. 순조 12년(1812년) 선생 6세때 조부 익순이 홍경래의 난에 관련되어 3월9일에 服誅(복주)를 당하고 그일가는 조정으로부터 폐족을 당하였다.황해도 곡산에서 숨어 자라다 그 후 익순에 대한 문제는 본인에 국한하기로 한 조정결정이 알려져서 선생은 모친과 함께 곡산을 떠나 광주,이천, 가평을 전전하다가 평창을 거쳐 영월 삼옥리에 정착했다. 그는 본시 글공부만 좋아하고 출세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홀어머니 이씨의 간곡한 부탁으로 20살되던 해에 과거 예비고사격인 백일장에 참가하게 됩니다. 이날 백일장의 시제는 \''정가산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였음을 통탄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1811년(순조11년) 12월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가산군수였던 정시(鄭蓍)는 반란군과 용감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으나 선천방어사였던 김익순(金益淳)은 국가안보의 중책을 맡고 있는 무관임에도 불구하고 반란군이 쳐들어오자 싸우기는커녕 즉석에서 항복해 버렸습니다. 이듬해 봄, 난이 평정되자 김익순은 역적이라는 낙인이 찍혀 처형당하고 맙니다. 김병연은 평소부터 가산군수 정시를 \''천고의 빛나는 충신\'' 이라고 존경해왔던 반면 김익순을 \''백번 죽여도 아깝지 않은 만고의 비겁자\''라고 몹시 경멸해 오던 터라 김익순을 탄핵하는 글을 거침없이 적어 내려갔습니다. 장원을 차지한 그는 술한잔 걸치고 기쁜 맘으로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기뻐하기는커녕 눈물을 흘리며 이제까지 숨겨오셨던 집안내력을 가르쳐 주시니 반역자 김익순이 바로 김병연의 할어버지였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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