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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와 연혁

북구의 유래와 연혁

부족국가시대

  • 울산은 원래 삼한시대에는 진한에 속하였으며, 현재의 다운동을 중심으로 굴아화촌이라는 촌락이 형성되었다.

삼국시대

  • 우리 북구 지역은 신라때의 굴아화현ㆍ율포현지역으로써, 신라 제35대 경덕왕 16년(서기 757년)에는 굴아화현을 하곡현(일명:하서, 지금의 효문ㆍ양정동 및 중구 일원)으로, 율포현은 동진현(지금의 농소ㆍ강동ㆍ송정ㆍ염포동 및 동구 일원)으로 지명을 개칭하여 지금의 경주시 모화지방에 있었던 임관군에 속하였다.

고려시대

  • 고려 태조 때 하곡ㆍ동진ㆍ우풍 3현을 합쳐 흥려부(일명:흥례부)로 승격되어 한 고을로써 오늘의 기반을 갖추었으며, 성종 10년(서기 991년) 흥려부를 공화현으로 낮추고, 별호를 학성이라 하였다. 현종 9년(서기 1018년)에는 울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

  • 제3대 태종 13년(서기 1413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울주를 울산으로 고쳐 비로소 "울산"이라는 칭호가 등장하게 되었다. 선조 32년(서기 1599년) 임진왜란 당시 울산 의병들이 왜적을무찌른 공이 컸던 점이 인정되어 울산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근대

  • 고종 32년(서기 1895년) 도호부를 군으로 개칭하여 군수를 두었다가, 1914년 부ㆍ군을 정리ㆍ폐합하는 지방제도 개편시 울산지역은 언양군을 울산군과 병합하고, 19개면으로 개편되었으며, 우리 북구는 농소면(지금의 농소1ㆍ2ㆍ3동, 송정동 일원), 강동면(지금의 강동동 일원), 하상면(지금의 효문ㆍ양정동 및 중구 일원), 동면(지금의 염포동 및 동구 일원)으로 개편되었다. 1931년에는 종래의 편제를 개편하여 울산면을 울산읍으로, 1936년에 동면은 방어진읍으로 승격되었다.

현대

  • 제3공화국의 탄생과 더불어 경제개발의 중심지로 선정된 울산은 1962년 2월 1일 각령 제403호로 울산군의 울산읍, 방어진읍, 대현면, 하상면 전 지역과 청량면 두왕리, 범서면 무거ㆍ다운리 ,농소면 송정ㆍ화봉리를 울산특정공업지구로 지정 공포하고, 같은 해 6월 1일 법령 제1068호로 위 지역을 울산시로, 나머지 지역은 울산군에서 울주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당시 농소면(지금의 농소 1ㆍ2ㆍ3동)과 강동면(지금의 강동동)은 울주군 관할구역에 편입되었다. 1985년 7월 15일부터 울산시가 중ㆍ남구의 구청이 개청되면서 지금의 효문ㆍ송정ㆍ양정ㆍ염포동은 중구 관할구역에 편입되었고, 1991년 1월 1일 법률 제4274호로 울주군이 울산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95년 1월 1일 법률 제4081호로 울산시ㆍ군이 통합되면서 울산군이 울주구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같은 해 3월 2일 농소면이 농소읍으로 승격되었다.

울산광역시 북구

  • 1996년 12월 31일 법률 제 5243호의 울산광역시설치등에관한법률 규정에 따라, 1997년 7월 15일자로 울산광역시 출범과 함께 중구의 진장ㆍ효문ㆍ송정ㆍ양정동과 울주구의 농소읍, 강동면을 합쳐 151.46㎢를 관할구역으로 하는 북구가 탄생하면서 농소읍이 농소 1ㆍ2ㆍ3동으로 분동되고, 강동면이 강동동으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 1998년 2월 24일 대통령령 제15652호에 의거 동구 염포동이 동년 3월 1일자로 편입되어 9개동으로 형성되었으나, 1998년 10월 1일 구조례 제124호에 의거 진장동이 효문동으로 통·폐합 되면서 지금의 8개동의 행정체제를 유지하게 되었다. 신청사 건립으로 2001년 6월 1일 조례 제244호로 구청 소재지를 울산광역시 남구 돋질로 69에서 울산광역시 북구 산업로 1010로 변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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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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