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관광지
관문성
현황
관문성 현황 - 지정현황, 소재지, 축성시기, 지정구역, 부대시설로 구성
지정현황 |
국가사적 제48호(1963. 1. 21지정) |
소재지 |
북구 중산동(동대산) ∼ 울주군 두동면(치술령 망부석) |
축성시기 |
신라 성덕왕 21(722년) |
지정구역 |
30필지 992,124㎡ |
부대시설 |
문화재안내판 1, 도로표지판 6, 경고문 2, 탐방로 안내판 15 |
연혁
- 왜구가 신라의 수도인 경주로 침입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722년(신라 성덕왕 21년)에 돌로 쌓은것이다. "삼국유사"에는 각간 원진이 39,262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 원래는 모벌군성, 모벌관문으로 불리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관문성으로 부르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있다.
- 관문성이라고 한 것은 이 성이 경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이 성을 만리성이라고도부른다.
- 길이 40~50cm로 다듬은 돌을 5단 내지 6단으로 쌓고 그 위에 자연석을쌓았는데, 위로 쌓아 올리면서 폭을 좁혀가는 물림쌓기 방법을 썼다.
- 경주시 외동읍의 서쪽 해발 765m의 치술령 줄기 남쪽에서부터울산광역시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따라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의 동쪽산아래까지 뻗어 있어서 전체 길이가 약 12km에 이른다
- 북구청에서 경주방면 7번 국도. 태화고등학교 방향으로 학교 앞에서 10m지점 위치(10.6Km, 12분소요)
중산동 고분군
현황
중산동 고분군 현황 - 지정현황, 소재지, 축성시기, 지정구역, 부대시설로 구성
지정현황 |
시지정기념물 제9호 (1997. 10. 9 지정) |
소재지 |
중산동 616-1번지 일원, 694번지 일원, 대암훼미리아파트 주차장 내 |
축성시기 |
삼한시대 ∼ 신라시대 |
지정구역 |
13필지 21,381㎡ |
부대시설 |
문화재 안내판 4, 도로표지판 1, 경고문 2 |
연혁
- 삼한 ·삼국시대에 형성된 대규모 고분군으로 현재 3군데 지정되어 있다.
- 1991년과 1993년의 발굴조사 결과 돌덧널무덤, 덧널무덤, 돌무지덧널무덤, 구동식돌방무덤, 굴식돌방무덤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확인되었고, 여러 종류의 토기, 둥근머리큰칼 등의 무기, 철판갑옷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무장류가 다량 수습되었다.
- 1,200여 점의 토기, 둥근머리큰칼 6점을 비롯한 200여 점의 철기, 금제 및 금동제 장식 3점이 수습되었다.
- 2차 발굴에서 다시 101기의 무덤과 청동기시대 움집터 1기가 조사되었고, 960점의 토기와 다량의 철기가 수습되었다.
- 중산동 고분유적과 유물은 삼한 ·삼국시대(신라) 묘제 및 토기의 변천과정을 밝히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 북구청에서 경주방면 7번 국도. 현대글로리아아파트 방면. 아파트앞에서 좌회전 30m지점 위치(9Km, 15분소요)
중산동 취락유적
현황
중산동 취락유적 현황 - 지정현황, 소재지, 축성시기, 지정구역, 부대시설로 구성
지정현황 |
시지정기념물 제41호(2003. 4. 24 지정) |
소재지 |
중산동 656-1번지 일원 |
축성시기 |
삼한∼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취락유적 |
지정구역 |
16필지 15,663㎡ |
부대시설 |
도로표지판 2, 문화재안내판 1 |
연혁
- 이 유적은 옛 사람들의 집단거주이였던 곳으로 중산리 이화마을과 갓안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지역에 위치한다. 태화강 북쪽 지역을 대표하는 삼한 후기 ~ 삼국 후기시대 취락유적이다.
- 2002년 발굴기관과 시굴조사에서 주거지, 작업장, 방어시설 등이 확인되어 당시 취락의 구성, 범위, 배치 및 주변 지역과의 교류, 변천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며, 또한 사로국에서 신라로 성장해 가는 신라 초기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 인접한 중산동 고분군(기념물 제9호)을 축조한 주인공들이 바로 이 취락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들은 살아있던 사람들이 생활공간과 죽은자들의 영역을 철저하게 분리하였다.
- 또한 그들이 사용한 생산도구 중 철기구는 당시의 대표적인 철생산지였던 달천철장(기념물 제40호)의 철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 북구청에서 경주방면 7번 국도. 화정마을입구에서 우회전하여 월성유치원방면(9Km, 14분소요)
대안동 쇠부리터
현황
대안동 쇠부리터 현황 - 지정현황, 소재지, 규모(수량), 지정구역로 구성
지정현황 |
시지정기념물 제44호 (2006년 1월 26일 지정) |
소재지 |
북구 대안동 산177번지 |
규모(수량) |
가마의 규모가 100㎝, 지름 200㎝ |
지정구역 |
1필지 1,660.8㎡ |
연혁 및 지정사유
- 삼한시대 이래 영남지역 최대 철생산지였던 달천철장의 토철을 이용하여 쇠를 생산하던 쇠부리터는 울산, 경주, 밀양, 청도 일대에 약 120여기 이상 존재함(권병탁 교수)
- 그 중 1기였던으로 판단되며,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과 작은 천(川)이 옆에 있어, 쇠부리작업에 필요한신흥사 구 대웅전 연료(숯)과 물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서 이곳에 위치한 것으로 보임.
- 현재 토둑, 爐 일부가 잘 남아 있고, 주변에 관련 유적 및 쇠똥(슬래그)이 산재하고 있어 이 분야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되므로,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함이 타당함.
- 북구청에서 경주방면으로 7번 국도. 매곡산업단지 지나 마우나오션리조트에서 어전마을 방면으로 5.1Km(35분소요)
신흥사 구 대웅전
현황
신흥사 구 대웅전 현황 - 지정현황, 소재지, 축성시기, 보호구역, 부대시설로 구성
지정현황 |
시지정문화재자료 제9호(1998. 10. 19 지정) |
소재지 |
울산광역시 북구 대안4길 280(대안동 739번지) |
축성시기 |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 |
보호구역 |
3필지 5,197㎡ |
부대시설 |
문화재안내판 1, 도로표지판 1 |
연혁
- 이 건물은 본래 건흥사의 대웅전으로 635년(신라 선덕여왕 4년)에 명랑조사가 처음 건립했다고 전한다.
- 절의 기록에 의하면, 678년 (문무왕 16년)에 승병 100여 명이 이 절에 머물면서 무술을 닦았다고 한다.
- 이 절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 활동과 관련이 깊다. 건흥사는 울산지역에서 승군 동원 기록이 있는 유일한 사찰로 울산지역 승병 활동의 거점이 되었다.
- 울산이 왜군에게 함락 되자 의병들은 기박산성에 진을 쳤다.
- 이 절의 스님 지운은 승병 100여명을 이끌고 적극 참여했으며, 절의 양식 300여 석을 군량미로 내기도 했다고 한다.
- 정유재란 때에 이 절이 불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병마절도사 이급이 1646년(인조 24년)에 절을 다시 세워 신흥사라고 했다.
- 이 건물은 1998년 새로이 대웅전을 지으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은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층 팔작집이다.
- 조선후기 건축의 일반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내부 천정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반자는 높은 예술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 북구청에서 경주방향 7번 국도. 천곡사거리에서 우회전 매곡로 진입. 마우나오션리조트방면, 기령고개앞에서 우회전 1.8km지점 위치(14km, 29분 소요)
매곡동 생활유적
현황
매곡동 생활유적 현황 - 지정현황, 소재지, 지정구역, 부대시설로 구성
지정현황 |
시지정기념물 제45호(2007. 11. 22 지정) |
소재지 |
매곡동 351-10 |
지정구역 |
1필지 21,120 ㎡ |
부대시설 |
체육시설, 휴게정자, 안내판 1, 경고판 1 |
연혁
- 이 생활유적은 동대산(해발 444m)에서 동천 방향(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일대에 분포한다.
-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루어진 3차례의 시 발굴조사를 통해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삼국시대 구덩이 및 고분, 숯가마, 고려시대 분묘, 조선시대 숯가마 등 여러 시대의 다양한 매장문화재가 이곳에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 따라서 매곡동 생활유적은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복합유적으로 이 지역의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 이곳에서 확인된 삼국시대 숯가마는 옆쪽에 여러 개의 구멍이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측구부탄요라고 부른다.
- 삼국시대의 숯가마는 철생산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의 어느 지역보다 많은 수의 삼국시대 숯가마가 분포하고 있다.
- 이 때문에 인근의 달천철장과 함께 울산지역 고대 제철기술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북구청에서 경주방면으로 7번 국도. 상안사거리에서 우회전. 시장2리사거리에서 좌회전. 매곡산업단지 입구 방면(8Km, 16분소요)
상안동 지석묘
현황
상안동 지석묘 현황 - 지정현황, 소재지, 축성시기, 지정구역, 부대시설로 구성
지정현황 |
시지정기념물 제30호(2000. 11. 9 지정) |
소재지 |
북구 상안동 223-1번지 일원 |
축성시기 |
청동기시대 |
지정구역 |
15필지 1,055.6㎡ |
부대시설 |
문화재안내판 1, 경고문 1, 도로표지판 2 |
연혁
- 지석묘는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는데,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지석묘 집중지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우리나라의 지석묘는 4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것을 탁자식 또는 북방식이라 하고,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것을 바둑판식 또는 남방식이라 하는데, 바둑판식에서 받침돌이 없는 것을 따로 개석식 또는 무지석식이라 하여 구분한다. 울산지역에서는 주로 개석식과 바둑판식이 나타난다.
- 상안동 지석묘는 바둑판식 1기로서 상안동 신답마을의 경작지에 있다.
덮개돌은 화강암으로 땅 위에 반듯하게 놓여 있는데, 크기는 210㎝, 너비 170㎝, 두께 100㎝ 정도이며, 덮개돌 위에는 작은 돌로 문질러서 둥글게 판 알 모양의 성혈이 10여개가 있다.
- 이 성혈은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거나 태양을 상징한다고 본다.
- 덮개돌 아래의 양쪽에는 받침돌이 보이는데 내부 구조는 학술조사를 실시하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 이 상안동 지석묘는 북구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것으로 청동기시대 상안동 일대의 정치·사회·문화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 북구청에서 경주방면 7번 국도. 쌍용아진그린타운 방면
(5Km, 11분소요)
달천철장
현황
달천철장 현황 - 지정현황, 소재지, 축성시기, 지정구역, 부대시설로 구성
지정현황 |
시지정기념물 제40호(2003. 4. 24 지정) |
소재지 |
달천동 산20-1번지 일원 |
축성시기 |
삼한∼조선시대까지의 철광석의 원산지 |
지정구역 |
3필지 68,292.5㎡ |
부대시설 |
안내판 1, 도로표지판 1 |
연혁
- 철장이란 철의 원료인 토철 또는 철광석을 캐던 곳을 말한다. 달천동 및 상안동 일대에 분포하는 이 유적은 원래 이름인 달내에서 유래하였으며, 그 역사는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중국문헌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후한서"에는 "한·예 ·왜 모두가 여기서 철을 가져가며, 모든 시장에서 철을 사용하며 매매하는 것이 마치 중국에서 돈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는 기사가 있다.
- 그래서 철이 당시의 경제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우리 나라 문헌에 달천철장이 등장하는 시기는 조선시대 세종조부터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1452년 달천에서 생산된 철 12,500근이 수납 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특히, 달천의 철은 경주 황성동의 제철유적에서 출토된 철과 함께 비소성분이 확인되어 역사적 중요성을 더한다.
- 철을 제련하는 곳을 쇠부리(쇠불이)터라 불렀는데, 달천 토철을 원료로 하는 쇠부리(쇠불이)터는 가까운 경주 외동읍 녹동리(덧거리)에서부터 멀리는 청도에까지 이르렀다.
- 북구청에서 경주방면으로 7번 국도. 천곡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달천아이파크 맞은편(8Km, 17분소요)
창평동 지석묘
현황
창평동 지석묘 현황 - 지정현황, 소재지, 축성시기, 보호구역, 부대시설로 구성
지정현황 |
시지정기념물 제31호(2000. 11. 9 지정) |
소재지 |
북구 창평동 178, 산45-2번지 |
축성시기 |
청동기시대 |
보호구역 |
7필지 2,124.1㎡ |
부대시설 |
문화재안내판 1, 도로표지판 4 |
연혁
- 지석묘는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는데,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지석묘 집중지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우리나라의 지석묘는 4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것을 탁자식 또는 북방식이라 하고,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것을 바둑판식 또는 남방식이라 하는데, 바둑판식에서 받침돌이 없는 것을 따로 개석식 또는 무지석식이라 하여 구분한다.
- 울산지역에서는 주로 개석식과 바둑판식이 나타난다.
- 창평동 지석묘군은 창평동 난골마을 구릉에 1기, 경작지의 논두렁에 1기가 있는데, 300m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 덮개돌은 화강암으로 땅 위에 비스듬히 놓여 있는데 논두렁에 있는 것은 크기가 길이 210㎝ 너비 210㎝ 두께 90㎝ 정도이며 받침돌은 보이지 않고, 구릉에 있는 것은 길이 180㎝, 너비 150㎝, 두께 90㎝ 정도이고 받침돌로 추정되는 돌들이 덮개돌 아래에 깔려 있다.
- 내부구조는 학술조사를 실시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 이 창평동 지석묘는 청동기시대 창평동 일대의 정치·사회·문화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 북구청에서 경주방면 7번 국도. 원지삼거리에서 우측방향
(4.75Km, 8분소요)
박상진의사 생가
현황
박상진의사 생가 현황 - 지정현황, 소재지, 지정구역, 부대시설로 구성
지정현황 |
시지정문화재자료 제5호 (1997. 10. 9 지정) |
소재지 |
울산광역시 북구 박상진길 23(송정동 355번지) |
지정구역 |
1필지 2,245㎡ |
부대시설 |
전시관, 문화재 안내판 1, 도로표지판 5 |
연혁
- 이 집은 독립운동가 박상진(1884~1921)의사가 살았던 집이다.
- 박상진의사는 1902년 허위(許蔿)선생에게 한학을 배운 후 양정의숙에 진학, 법률과 경제를 전공하고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하여 평양법원에 발령 되었으나 사퇴했다.
- 그 후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1915년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 결성에 앞장섰다.
- 박상진의사는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여 무력으로 독립을 달성할 목적으로 대한광복회 총사령을 맡아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1921년 형집행으로 38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으로 추서되었다.
- 인대지주였던 박상진의사는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여 집안은 몰락하였고, 이 집도 남의 손에 넘어갔으나 2002년 울산시가 매입하여 2007년 복원 정비사업을 완료 하였다.
- 이 집은 사랑채, 안채 등 모두 6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기와집으로, 전체적으로 볼 때 'ㅂ'자형 구조를 가진 조선 후기 양반 살림집이다.
관람시간
- 03월 ~ 10월 : 09:30 ~ 17:30
- 11월 ~ 02월 : 09:30 ~ 17:00
- 휴관일 :설날 연휴, 추석 연휴
관람료 : 무료
- 북구청에서 경주방면 7번 국도. 송정저수지방면, 지당3길에서 우회전 450m앞 지점 위치(3Km, 8분소요)
무룡산
연혁
- 무룡산은 해발 451로 높지 않은 산이지만 울산도심을 끼고 동해다와 연결해 있어 정산에서의 경치는 일품이다. 무룡산은 울산의 진산으로 옛부터 지방의 수호산으로 추앙받고 있다.
- 동으로는 동해의 푸른물결과 바다에 떠있는 어선을 볼 수 있고, 남으로는 태화강의 흐름과 울산공단의 위용을 볼 수 있으며, 서쪽으로는 울산시가지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북쪽으로는 백두대간으로 연결된 산맥의 용트림을 구경할 수 있다.
- 무룡산의 일출은 새해의 해맞이 장소로도 유명하며 도심에 있는 관계로 야간산행이나 가족끼리의 산책코스로도 각광받고있다.
- 북구청에서 감포강동동방면 31번 국도. 구남교차로에서 300m 전방에서 좌회전 3.9Km지점 위치 (10Km, 23분소요)
강동화암 주상절리
현황
강동화암 주상절리 현황 - 지정현황, 소재지, 축성시기, 보호구역, 부대시설로 구성
지정현황 |
시지정기념물 제42호(2003. 4. 24 지정) |
소재지 |
산하동 952-1번지 일원 |
축성시기 |
신생대 제3기 |
보호구역 |
1필지 7,681.6㎡ |
부대시설 |
휴게정자, 화장실, 문화재안내판 2, 도로표지판 2 |
연혁
- 화암 주상절리는 북구 화암동 화암마을 화암(꽃바위) 해변 일대에 분포하는 유적으로 신생대 제3기 중신세(약2,000만년전)에 분출한 현무암 용암이 난류를 일으키면서 냉각할 동안 유동방향이나 등온면에 수직되는 방향으로 군집주상체를 형성시켜 성인적으로 높은 학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 유적은 우리나라 특히 동해안에 나타나는 주상절리 중 용암 주상절리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될 뿐 아니라 주상체들은 좁은 구역내에서 그들은 거의 수평(대표적 방향) 내지 거의 수직되게 가지런한 목재더미처럼 방향을 휘어가며 배열되고 있고 그들의 횡단면은 꽃무늬를 보여주고 있어 화암(花岩)이라는 지명이 시사해 주듯이 높은 경관적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성인과 지질시대의 학술적 관점과 경관적 가치가 크다.
- 북구청에서 감포강동동방면 31번 국도. 정자삼거리에서 좌회전 2.4Km지점 위치(12Km, 23분소요)
강동몽돌해변
연혁
- 정자해변에는 동해의 푸른바다 일출광경과 더불어 깨끗한 몽돌 자갈 구르는 소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신비감을 안겨주는 강동으로 정자해변을 찾는 이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 새알같이 둥글고 작은 몽돌이 해변에 들어져 있다.
- 또한 몽돌의 크기가 규칙적으로 분포되어 있어 맨발로 밟으면 지압 역할을 해 건강 산책로로 각광을 받고 있다.
- 북구청에서 감포강동동방면 31번 국도. 정자삼거리에서 좌회전. (14Km, 20분소요)
정자항
연혁
- 정자빨간등대는 정자활어회센터의 끝자락 방파제 위에 우뚝 서있다.
- 회색빛 방파제 위에 빨간색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 멀리로는 멸치잡이배의 고동이 울리고 방파제 위에 늘어선 꾼들의 침묵도 아름답게만 보인다.
- 이곳에서의 바다의 해돋이는 동해의 추암 일출이나 남해의 항일망 일출 못지않은 감명을 느낄 수 있다.
- 북구청에서 감포강동동방면 31번 국도. 정자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180m 앞 신호등에서 좌회전 120m지점 위치 (10Km, 18분소요)
곽암(미역바위)
현황
곽암(미역바위) 현황 - 지정현황, 소재지, 지정구역, 부대시설로 구성
지정현황 |
시지정기념물 제38호 (2001. 12. 20 지정) |
소재지 |
구유동 판지마을 해수면하 |
지정구역 |
503㎡ |
부대시설 |
문화재안내판 1 |
연혁
- 곽암은 미역바위라는 뜻이다. 이곳 판지마을 바다 속에 있는 자연암인데 "양반돌", "박윤웅돌" 등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 1937년 간행된 "흥려승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박윤웅은 고려 태조(918~943)가 나라를 세울 때 공을 세워 흥려백에 봉해졌다.
- "흥려"라는 말은 고려를 흥성하게 하였다는 뜻이다.
- 동진(현의 농소 ·강동)을 채지로 하사 받았다.
- 강동의 미역바위 하나에서 생산되는 미역을 바닷가 사람들이 박윤웅의 후손 집안에 제공해 왔다.
- 바위에는 '允雄'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졌는데, 이것은 박윤웅의 위대한 공훈과 영원토록 썩지 않을 뜻을 기려서 어사 박문수가 새긴 것이다.
- 또한 "고려통합삼한록"에는 박윤웅이 2등 공신에 봉해졌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의 시호는 장무이다.
- 북구청에서 감포강동동방면 31번 도로. 정자삼거리에서 우회전 880m지점 판교구이단지 맞은편 위치(11Km, 19분소요)
유포석보
현황
유포석보 현황 - 지정현황, 소재지, 축성시기, 지정구역, 부대시설로 구성
지정현황 |
시지정기념물 제17호 (1998. 10. 19 지정) |
소재지 |
정자동 625번지 일원 |
축성시기 |
조선시대 |
지정구역 |
52필지 37,362.7㎡ |
부대시설 |
문화재안내판 1, 도로표지판 1, 경고문 2 |
연혁
- 이 성은 조선조 전기에 설치된 석보로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왜구 방비를 목적으로 문종 즉위년(1450년)에 처음 목책 설치를 시작하여 세조 원년(1455년)에 완료하였다.
- 그러나 단종 즉위년(1452년)에 다시 석축으로 개축하는 것이 논의 되기 시작하여 세조 5년(1459년)에 완료하였다고 한다.
- 이곳에는 병영과 울산, 경주 양진의 병사가 교대로 주둔하면서 수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현재 남아있는 체성은 구릉기슭의 낮은 평지와 계곡을 성내로 삼고 그 주위를 협축한 포곡성 형태이며, 둘레 880m, 현존높이 1.2m 규모이다.
- 북구청에서 감포강동동방면 31번 국도. 정자삼거리에서 좌회전 250m지점 위치(10Km, 17분소요)
제전장어마을
연혁
- 강동축구장에서 신명방면으로 10여분 가다보면 우측에 제전마을이 보인다. 이곳에는 장어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저렴한 가격으로 바다장어를 즐길 수 있다.
- 아담한 항구의 바닷속은 자연산 미역으로 출렁이고 바닷바람의 신선한 내음을 만끽하며 먹는 훈제 장어 구이의 맛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 북구청에서 감포강동동방면 31번 국도. 정자삼거리에서 우회전 1.5Km지점 위치 (11Km, 21분소요)
강동축구장
연혁
- 옛지명을 따 "江東축구장"으로 이름 붙여진 이 강동구장은 대한축구협회가 축구 붐조성을 통한 저변 인구 확대와 국가대표팀의 기술 훈련을 위해 건립한 것으로 국내 대부분의 축구장이 도심에 위치한데 반해 이례적으로 바다를 내려다보는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 이 축구장은 총 3만5천여평에 3개소의 잔디광장, 산책로, 연못 등의 부대시설과 함께 동해바다의 절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지형으로 쾌적하고 아늑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 북구청에서 감포강동동방면 31번 국도. 예비군훈련장방면에서 남목방면으로 (12Km, 23분소요)
어물동마애여래좌상
현황
어물동마애여래좌상 현황 - 지정현황, 소재지, 제작연대, 보호구역, 부대시설로 구성
지정현황 |
시지정유형문화재 제6호(1997. 10. 9 지정) |
소재지 |
어물동 산121번지 일원 |
제작연대 |
통일신라시대 |
보호구역 |
5필지, 4,508㎡ |
부대시설 |
문화재안내판 1, 경고문 1, 도로표지판 3 |
연혁
- 어물동마애여래좌상은 방 바위라 불리는 거대한 바위에 일광·월광 보살이 협시(挾侍)하고 있는 약사 삼존 불을 높게 돋을 새김 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 본존인 약사 불은 장방형의 양감 있는 얼굴인데 이목구비가 약간 마멸되었을 뿐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 당당한 어깨에 삼도가 뚜렷하고 강건한 신체는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할 만한 수법을 보여주지만 오른쪽 소매의 옷 주름과 마멸이 심한 두 손등은 다소 딱딱해진 면도 엿보인다.
- 좌우보살은 장방형의 긴 얼굴에 원통형 모관을 쓰고 있는데 각각 해와 달을 표시하고 있어서 일광·월광 보살임을 알 수 있다.
- 당당한 체구와 띠 매듭의 표현 등은 뛰어난 수법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각이진 어깨와 손 모양에서 형식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 일광·월광 보살이 협시한 약사 삼존 불로서는 보기 드문 예로 주목된다.
- 북구청에서 감포강동동방면 31번 국도. 구남교차로에서 예비군훈련장 방향. 훈련장에서 1.4Km지점 위치(9Km, 17분소요)
우가산유포봉수대
현황
우가산유포봉수대 현황 - 지정현황, 소재지, 축성시기, 보호구역, 부대시설로 구성
지정현황 |
시지정기념물 제13호(1998. 10. 19 지정) |
소재지 |
당사동 산171번지 일원 |
축성시기 |
조선시대 |
보호구역 |
6필지 8,262㎡ |
부대시설 |
문화재안내판 1, 도로표지판 1 |
연혁
- 봉수대는 사방이 잘 보이는 산봉우리에 위치하여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인근 봉수대와 서로 연락하여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과 해당 진영에 알리던, 옛날 군사 통신 수단의 하나이다.
-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던 제도인 듯하나, 그 체제가 정비된 것은 조선 세종 때였다.
- 오장과 봉군이 배치되어 근무하면서, 평상시에는 한 홰, 적이 나타나면 두 홰, 적이 국경에 접하면 세 홰, 적이 국경을 넘어오면 네 홰, 적과 접전하면 다섯 홰의 봉수를 울렸다고 하는데, 1894년(고종 31년)에 전보통신이 보급되면서 폐지되었다.
- 이 우가산 유포 봉수대는 동해안에 위치하는 연변봉수 가운데 하나로 남목천(현재의 주전)에서 봉수를 받아 경주 하서지로 전했다.
- 자연석으로 쌓은 둥근 모양의 아궁이와 주위의 방호벽, 봉수군 막사터가 잘 남아 있어서 우리나라 연변 봉수대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북구청에서 감포강동동방면 31번 국도. 예비군훈련장 방면. 훈련장에서 4.8Km 지점 강동축구장 인근 위치(13Km, 24분소요)
유포석보
현황
유포석보 현황 - 지정현황, 소재지, 축성시기, 부대시설로 구성
지정현황 |
시지정 기념물(1998.10.19.지정) |
소재지 |
정자동 625번지 일원 |
축성시기 |
조선시대 |
부대시설 |
국가유산 안내판, 도로표지판, 임시주차장 |
연혁
- 이 성은 조선조 전기에 설치된 석보로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왜구 방비를 목적으로 문종 즉위년(1450년)에 처음 목책 설치를 시작하여 세조 원년(1455년)에 완료하였다.
- 그러나 단종 즉위년(1452년)에 다시 석축으로 개축하는 것이 논의 되기 시작하여 세조 5년(1459년)에 완료하였다고 한다.
- 이곳에는 병영과 울산, 경주 양진의 병사가 교대로 주둔하면서 수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현재 남아있는 체성은 구릉기슭의 낮은 평지와 계곡을 성내로 삼고 그 주위를 협축한 포곡성 형태이며, 둘레 880m, 현존높이 1.2m 규모이다.
- 북구청에서 감포강동동방면 31번 국도. 정자삼거리에서 좌회전 250m지점 위치(10Km, 17분소요)
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
현황
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 현황 - 지정현황, 소재지, 조성시기로 구성
지정현황 |
국가지정유산(보물) (2021. 12. 22. 지정) |
소재지 |
대안4길 280(대안동) |
조성시기 |
1649년(인조 27) |
연혁
- 울산 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신흥사 대웅전에 봉안된 대세지-관음보살좌상으로 구성된 삼존상 중 본존상에 해당한다.
- 복장물 중 발원문, 후령통, 복장직물, 보석류가 본존불과 함께 국가지정유산(보물)로 지정되었다.
- 본존상의 크기는 상 높이 92.7㎝, 어깨너비 45㎝, 무릎너비 75㎝, 무릎높이 22.7㎝이다.
- 17세기 전반기 조각승 영색이 불석(拂石, 규산염의 일종으로 흰색의 광물)을 사용해 만든 유일한 기년명 불상이다.
- 본존상은 짧은 목에 머리를 약간 숙이고 결가부좌의 자세로, 짧은 상반신에 비해 다리 간격이 넓고 무릎이 높은 편이어서 하체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 얼굴은 방형에 넓적한 편이고, 눈꼬리가 올라간 긴 눈, 깊게 팬 입술 가장자리와 볼록하게 올라온 턱에서 온화하면서도 개성 있는 인상이 느껴진다.
- 장물의 발원문에는 불석의 산지였던 어천(현재 포항 오천읍)에서 돌을 채석하여 신흥사까지 옮겨온 이동 경로가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다.
- 북구청에서 경주방향 7번 국도, 천곡사거리에서 우회전 매곡로 진입
- 마우나오션리조트 방면, 기령고개 앞에서 우회전 1.8㎞지점 위치(14㎞, 29분 소요)
일곱만디
위치 및 해발고도
일곱만디 위치 및 해발고도 안내-연변, 위치, 지번, 해발고도, 비고로 구성
연번 |
위치 |
지번 |
해발고도 |
비고 |
1 |
무룡산 |
화봉동 산2-3 |
451m |
|
2 |
동대산 |
매곡동 산174-1 |
447m |
|
3 |
천마산 |
달천동 산171-2 |
296m |
|
4 |
우가산 (까치전망대) |
당사동 산35-2 |
173m |
|
5 |
호암만디 |
가대동 산82 |
약 250m |
|
6 |
동축산 |
염포동 산50-1 |
약 280m |
|
7 |
기령 |
매곡동 838-32 |
약 470m |
|
위치별 유래
일곱만디 위치별 유래 안내-명칭, 유래 설명, 출처로 구성
명칭 |
유래 설명 |
출처 |
무룡산 (舞龍山) |
기우제의 옛말인 무우제(舞雩祭)의 무(舞)자와 용(龍)자가 합쳐진 이름으로 주룡산의 무제(舞祭)를 지내는 산이라는 뜻이다. |
『울산북구지명사』 p380쪽 |
동대산 (東大山) |
울산광역시의 동쪽에 있는 큰 산이라는 데서 불리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
『울산북구지명사』 p380쪽 |
천마산 (天馬山) |
산의 형세가 말이 하늘로 오르는 모양새를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울산북구지명사』 p233쪽 |
우가산 (牛家山) (까치전망대) |
우가포마을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가’는 마을의 지형이 소가 누운 것 같이 생겨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명 구봉산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유포봉수대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
『울산북구지명사』 p363쪽 |
호암만디 |
학성이씨 문중 족보에 가대마을 뒷산 정상부에 호랑이가 놀던 바위와 굴이 있어 호암만디라고 불렸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음. |
|
동축산 (東竺山) (염포누리 휴게쉼터) |
동축(東竺)은 ‘동쪽에 있는 나라’라는 의미로 산자락 위치한 동축사는 신라 동쪽에 있는 부처의 나라라는 신라 불국토사상(佛國土思想)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절로 1994년 4월 21일 울산광역시 전통 사찰 제1호로 지정되었다. 동축산 정상에 올라서면 태화강과 울산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
『울산북구지명사』 p573쪽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기박산성 (기령) |
기박산성은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훈련을 받았던 곳으로 왜병에 빼앗겼던 병영성을 탈환하기 위해 울산에서는 최초로 의병들이 창기 했던 곳이다./td>
| 『울산북구지명사』 p124쪽 |
정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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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룡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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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룡산 정상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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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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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 정상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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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만디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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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만디 정상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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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령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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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령 정상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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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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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산 정상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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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축산 정상(염포개항기념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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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축산 정상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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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산 정상(까치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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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산 정상 안내판
강동화암 주상절리
동해안 주상절리 가운데 용암 주상절리로는 가장 오래되어 학술적 가치가 높고 주상체 횡단면이 꽃무늬를 형성하고 있어 경관적 가치가 크다.
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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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철장
삼한~조선시대까지 경제발달에 크게 기여한 철광석의 원산지였으며 2003년에 시 지정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되었다. 울산쇠부리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관리시설 개관중이며 해마다 쇠부리축제가 개최되는 장소이다.
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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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해양낚시공원
용바위와 넘섬이 이어진 바다 위 산책로로 최근 일출명소로 떠오르면서 가볍게 산책도 즐기고 낚시도 할 수 있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다리중간쯤에 있는 유리다리는 바다 위를 직접 걷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인근에 바다 위에서 캠핑을 즐길 수 있는 “당사현대차오션캠프” 조성 및 당사항 정비사업 추진을 통한 관광연계 가능하다.
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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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곡천 야경
“빛과 물이 함께 춤추는 매곡천”이라는 타이틀로 새롭게 재정비하여 산책하기 좋고 넓은 주차공간이 있다. 매곡천 친수환경조성 및 경관개선 사업 준공으로 북구 주민의 쉼터이자 야경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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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촌억새군락지
중구, 남구, 북구에 걸쳐있는 억새 군락지 중 명촌동 일대가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고 있다. 어른 키보다도 큰 억새밭 사이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친환경 생태공간으로 가족·연인 등 산책코스로 인기가 많으며 접근성이 용이하다.
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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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룡로벚꽃길
- 소재지 : 어물동/무룡로(구. 국도 31호선)
예로부터 강동지역으로 들어오는 통로역할을 했던 무룡로(구. 국도31호선)에는 강동동 주민들이 동민화합을 위해 심은 벚나무가 10여 년 세월이 흘러 아름다운 꽃길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신도로 개통으로, 차량 통행량이 많지 않아 매년 봄 벚꽃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포토 스팟이 되었다.
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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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룡산에서 바라본 전경
울산12경에도 속했을 만큼 보석을 뿌려놓은 것과 같이 아름다우며, 울산이 한국의 산업수도로써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역동성과 상징성이 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춤추며 놀았다는 전설이 있는 해발 452m의 무룡산은 울산의 진산으로 동쪽으로 동해바다 서쪽으로 울산시내가 조망가능하며 계절마다 변화하는 자연 환경이 수려하다.
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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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박상진호수공원
대한 광복회 총사령관 고헌 박상진의사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친환경 수변공원으로 박상진의사 생가가 근처에 있어서 코스로 같이 둘러 보기도 좋다. 도심에서 멀지 않고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탁트인 자연경관은 깊은 산속에 들어온 느낌이며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맑은 호수 공원이다. 수변을 따라 걷는 산책로와 역사·생태탐방로로 친수공간과 생태 체험 공간을 제공한다.
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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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몽돌해변
강동 몽돌해안의 끝자락에 위치하여, 사람의 손길이 채 닿지 않아 몽돌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미역철이 되면, 곽암이라 불리는 검은 바위 옆으로 미역을 말리고 있는 어촌마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산과 바다를 끼고 이어져 드라이브 코스로 으뜸이며 깨끗한 몽돌과 푸르른 바다에 눈길을 뺏기게 된다.
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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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포전망쉼터
“염포누리 주민휴게공간 조성사업”을 추진하여 태화강 하류와 동해바다 등 360도 조망이 가능하여 관광객 및 사진작가들에게 인기 있는 지역이다. 산으로 올라가는 중턱에 있는 염포누리전망대는 현대자동차 수출선적부두와 공단, 울산대교, 태화강 등이 모두 보여 경관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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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항 귀신고래등대
정자항은 국가어항으로써 싱싱한 회로도 유명한 곳으로 특히, 가자미는 전국 활어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한다. 울산의 상징인 귀신고래의 암수 형상을 한 등대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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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 편백산림욕장
한국관광공사 ‘2020 언택트 관광지 100선’ 및 ‘2021 강소형 잠재관광지 육성사업 선정되었다. 달천동 천마산에 산림욕장을 겸한 주민휴식처로 5ha에 30년 이상 된 편백나무 8,500여 그루가 조성되어 있으며, 만석골 저수지에서 편백숲까지 산책로와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비치베드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작은 숲속 도서관과 숲 해설사를 운영하여 방문객들에게 심신회복과 자연학습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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