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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룡산 소개
해발 451m의 무룡산은 울산의 진산이며 지금은 방송 중계탑들이 세워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영산이다. 강원도 태백산맥이 남으로 뻗으면서 그 한줄기가 경주 토함산을 이루고, 그 남쪽에는 동대산맥을 형성하면서 우뚝 솟은 준령이며 동대산맥이 만들어낸 울산의 진산이다.
무룡산이란 춤출 “무”〔舞〕자와 용 “룡”〔龍〕자 뫼“산”〔山〕자로서 용이 춤을 추던 산이라 한다.
무룡산은 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한가지 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무룡산 꼭대기에는 큰 연못이 있었다. 이 연못에는 일곱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마리의 용이 눈이 멀어서 함께 있는 용들로부터 놀림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오색 구름이 찬란하더니 칠색 무지개가 쭉 뻗어 무룡산정 연못에 뿌리를 박은 것이다.
칠색 무지개를 타고 하늘의 옥황선녀 일곱이 이 연못에 내려와 칠룡들과 목욕을 하게 되었다. 눈먼 장님룡과는 아무도 놀고 싶어 하지 않았고 장님룡이 서러워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본 마음씨 착한 선녀가 다가와 장님룡을 보고 "나하고 놀아요" 하여 장님룡은 기뻐하였다. 다른 여섯 룡과 여섯 선녀들은 비웃기나 하면서 따로 놀았다.
목욕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갈 시간이 되어 여섯 룡과 여섯 선녀들은 정이 들어 떨어질 수가 없어 함께 오르기로 하였으나 눈먼 장님룡은 오를 수가 없어 눈물을 흘렸다. 그 때, 마음씨 착한 선녀가 장님룡과 같이 있기로 하고 여섯 선녀들에게 말하였다.
"얘들아 하늘에 올라가거든 옥황상제 폐하께 너희들과 함께 오르지 못한 사정이야기를 하여다오."
여섯 선녀들은 까르르 웃으면서 쌍쌍이 짝을 지어 칠색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랐다. 선녀와 용들이 하늘로 오르던 그날부터 시커먼 먹구름이 일고 천지를 진동시키는 천둥을 치며 장대같은 비가 일주씩이나 퍼부었다. 하늘의 옥황상제가 노발대발 한 것이다. 일곱이 같이 갔으면 사이좋게 놀다 같이 올라와야지 하며 호통이었다. 그리하여 여섯 선녀와 여섯 룡을 지하로 내려보내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한편 눈먼룡과 마음씨 착한 선녀는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고 하늘로 올라가 옥황의 조화로 눈을 뜬 후 짝을 지워 배필이 되고, 무룡산으로 내려와 귀양살이를 하던 선녀들은 날마다 수심에 잠겨 하늘나라만 쳐다보며 그래도 용들과 함께 살게 된 것을 행복해 하면서 날마다 춤을 추었다.
그런지 얼마후 옥황의 노여움이 풀어져서 선녀들과 용들을 하늘로 불러 올리니 춤을 추고 기뻐하면서 하늘로 득천하였다.
이같은 전설이 담긴 무룡산정에는 그후 연못은 없어지고 그곳 주변이 대명지가 있다고 했으며 여기에 묘를 드리면 울산지역에 비가 오지 않았다. 가뭄이 들면 강동면, 농소면 외 지역주민들이 총동원하여 무룡산정으로 올라가 누가 묘를 드리지 않았나 하고 샅샅이 뒤진다. 묘가 발견되지 않도록 봉분을 하지 않고 평장의 묘를 드려 놓은 것이다. 묘를 파내고 나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것이었다.
<출처>
- 울산북구문화원 원장 박종해 "울산 북구 지명사"
- 북구향토문화연구소 소장 심강보 "내고장 향토 문화재" 사진 제공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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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재(매봉산)
- 옛날 해일이 일어나 산천이 모두 물에 잠겼으나 이재에는 매 한마리가 앉아 있을 정도의 물에 잠기지 않은 바위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 매봉산은 '높은 산' 이라는 뜻도 함께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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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기재(돌벽재)
- 매봉재와 무룡산으로 가는 임도 중간쯤 있는, 해발 270m에 자리 잠고 있다.
- 돌이 많이 박혀 있어 돌베기재(돌벽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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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 저수지
- 1974년 12월 준공한 농업용 저수지이다. 무룡산에서 내려온 물을 가둬 만든 댐으로 주 수원은 서당골과 용당골이 있다.
- 저수량은 108만3천톤이고, 몽리 면적은 300ha 이며, 유역 면적은 506ha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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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령재
- 송정저수지 위쪽에서 울산 강동면 달곡으로 넘어가는 재를 達峴 또는 達嶺 이라 한다.
- 조선조에는 창평리 원지에서 달령으로 돌아 우음이 다음밝골을 지나 대안에서 양남 양북으로 북상하는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이기도 하다. 달령재를 오르다보면 돌을 쌓아둔 곳들이 많이 보이며 정상에는 큰 돌무덤이 있다. 돌무덤을 분석해 본다면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산짐승들의 울음소리와 험란한 재를 넘다보면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고 식은땀을 흘리게 된다. 그런 무서움을 없애기 위해 한사람 두사람 돌을 하나씩 쌓으면서 신의 믿음으로 그 힘을 빌려 마음의 편안을 하기 위해 쌓은 돌무덤을 신당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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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골
- 송정저수지 상단에서 달령재로 가는 입구에서 계곡으로 10여분 가다보면 양 갈래의 계곡이 나오는데 남쪽계곡으로 가면 용당골이고 북쪽계곡으로 진입하면 서당골이다. 계곡을 따라 20여분 가다보면 옛날 도원서당과 생활 터전의 흔적들이 많이 산재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화봉 사람들은 무룡산을 매봉산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 매봉산과 동화산의 사이에는 북쪽으로 트인 넓은 골짜기가 있어도 그 물은 날개뱅이로 흘러내린다. 이 골짜기를 서당골이라 한다.
- 서당골에는 도원서당이 있었다가 1894년의 기록에는 이미 없어졌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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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쉼터
- 무룡산 정상에서 산불초소(장등바위)로 가는길에 북쪽으로 내려가면 무룡임도와 만나는 곳에 숲속쉼터가 있다.
- 2006년도에 신현동 산 222-1번지 일원에 1,000m2의 면적으로 야외무대, 파고라등이 설치 되어, 등산객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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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령재-스토리텔링
- 송정저수지에서 울산 강동동 달곡(月谷. 達谷)으로 넘어가는 재를 달현(達峴) 또는 달령(達嶺)이라 한다.
- 조선조에는 창평동 원지에서 달령으로 돌아 우음이 다음밝골을지나 대안에서 양남 양북으로 북상하는 관로가 있기도 하여 달령은 교통의 요충지였던 곳이다.
- 산세가 험하고 나무숲이 빽빽하여 임진왜란 당시 군사요충지로도 많은 공을 세운 곳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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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神堂)-스토리텔링
- 달령재를 오르다보면 돌을 쌓아둔 곳들이 많이 보이며 정상에는 큰 돌무덤이 있다. 돌무덤을 분석해본다면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산짐승들의 울음소리와 험란한 재를 넘다보면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고 식은 땀을 흘리게 된다. 그런 무서움을 없애기 위해 한사람 두사람 돌을 하나씩 쌓으면서 신(神)의 믿음으로 그 힘을 빌려 마음의 편안을 하기 위해 쌓은 돌무덤을 신당(神堂)이라 하였다.
- 달령재 정상의 신당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얼마나 이곳을 왕래 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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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산(매봉재)-스토리텔링
- 연암동에서 무룡산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산으로 흔히들 매봉재라고도 부른다.
- 이 산이 매봉재로 불리는 것은 옛날에 해일이 일어나 산천이 모두 물에 잠겼으나 이 산에는 매 한 마리가 앉아 있을 정도의 물에 잠기지 않은 바위가 있었다는데서 유래한다.
- 매봉산은 ‘높은 산’이라는 뜻도 함께 갖고 있다.
동대산 소개
북구 동북지역을 감싸고 있으며 높이는 해발 447m이다. 북구는 이 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해안을 낀 강동동이 있고 서쪽은 북구의 사회. 경제 중심지인 농소 1.2.3동이 자리잡고 있다.
옛날에는 이 산이 인근 주민들 삶의 터전이었다. 사람들은 동쪽에 있는 해안과 서쪽에 있는 평야를 중심으로 집을 지어 터전을 잡았고 산비탈을 개간해 농산물을 재배했다.
이 산에는 씀바귀, 비비추, 돌나물, 부지갱이 나물 등 산나물도 많았고 복수초, 삼지구엽초 등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관상용 식물들도 많았다.
옛날에는 이 산이 있어 동서 교통이 어려웠으나 최근들어 기백이재를 중심으로 새로운 산길이 생겨나면서 주민들의 소통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산 정상에 마우나오션이 생겨나면서 매곡동을 거쳐 강동으로 넘어가는 길이 확장되어 이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산이 높다보니 골도 깊어 이화천, 약수천, 매곡천 등이 이 산에서 발원해 서쪽으로 흐르고 있고 천수답이 많은 신기 마을의 경우 인근 산비탈에 소류지를 많이 만들어 논밭에 물을 대기도 했다.
<출처>
- 울산북구문화원 원장 박종해 "울산 북구 지명사"
- 북구향토문화연구소 소장 심강보 "내고장 향토 문화재" 사진 제공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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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박산성
- 기박산성은 관문성과는 별도의 성[城]으로 동쪽으로는 산세의 경사가 완만하여 왜구의 방어에 적절한 곳이며 남쪽은 울산동해 일원 서쪽으로는 울산광역시 북구 농소, 신천동, 중산동 일대를 동시에 관망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갖춘 곳이므로 제33대 성덕왕[聖德王] 21년 서기 722년 동[冬] 10월에 쌓은 성[城]으로 삼태봉의 산마루를 둘러싼 포곡식[包谷式]이며 길이는 약 1.8㎞나 된다.
- 이 성[城]의 특이한 점을 살펴본다면 홍수를 대비하여 배수구 3곳 및 성[城]돌 하단부에 명문석[銘文石]이 10여개가 발견되어 학계에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 「기박산성」은 성을 쌓는 그 둘레에 붉은 기를 꽂아 방향 및 거리를 표시하여 쌓은 것이므로 성의 명칭이 붙여진 것으로 본다.
- 산성 남쪽 속칭[俗稱]「기백이재」는 기박산성에서 유래되어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다. 임란때 기박산성에서 처음 결진[結陣] 편대[編隊]한 울산선비 18인이 나라의 위란[危亂]에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하늘에 맹세하였던 곳이다.
- 이와같이 공신의사님들의 충혼을 기리기 위하여 1999년 10월 울산시 북구 향토 문화 연구회를 창립하여 2000년도부터 매년4월 23일자 의병추모제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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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산
- 삼밭골의 동쪽에 있는데 무제등이라고 한다.
- 가뭄에 무룡산 산신에게 무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 호계동 수성마을에서 홈골 저수지 위에서 우측으로 오르면 무제등이다. 창평동 차일마을에서도 바탕재를 거쳐 무제등으로도 오른다.
- 옛날 해일이 있었을때 주변은 다 물에 잠겼으나 무제산은 무지게(풀을 지는 바장) 하나 정도의 높이가 남았다는 말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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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골
- 수성의 맨 동쪽 끝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 호봉에서 흐르는 물에 홈을 대어서 인수하여 식수로 하였음으로 홈골 또는 홍골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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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산 해맞이터
- 동대산(큰재)정상에 2010년도에 강동해변이 보이는 전망대를 설치하였다. 이곳에서 보면 강동해변 및 우음골, 대안동 등이 한눈에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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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구부리재[큰재·장재]-스토리텔링
- 호계동 수성마을 홈골에서 강동동 우음, 대안으로 넘어가는 재인데 재가 너무 험하여 옛날 소등에 나무와 풀을 베어 싣고 오르내릴 때 소가 구른다 하여 소구부리재 또는 큰산(동대산)이라 하여 큰재, 장재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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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재[밸방재·배배랑재·배베랑재]-스토리텔링
- 무룡산의 한 날개라하여 날개뱅이에서 북쪽으로 진입, 강동동[江東洞]의 우음, 아홉사리로 넘어가는 재이다.
- 비탈길이 험란하고 벼름빡같고 떨어지면 저승간다 하여 저승재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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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등[舞祭嶝],무제산[舞祭山]-스토리텔링
- 가뭄에 무룡산 산신에게 무우제(舞雩祭)를 지내던 곳이다.
- 호계동 수성마을 홈골 저수지 위에서 우측으로 오르면 무제등이다.
- 창평동 차일마을에서도 바탕재를 거져 무제등으로도 오른다.
천마산 소개
달천마을 북쪽에 있으며 경주시와 경계 지점으로 동쪽으로 순금산과 연결된다.
산의 형세가 말이 하늘로 오르는 모양새를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산은 일명 천전봉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것은 산이 천정처럼 높다는데서 생겨난 이름이다.
<출처>
- 울산북구문화원 원장 박종해 "울산 북구 지명사"
- 북구향토문화연구소 소장 심강보 "내고장 향토 문화재" 사진 제공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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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성
- 1938년 울산광역시 사적 제48호로 지정되었다. 북구 천곡동. 달천동. 중산동과 울주군 범서읍 두산리 일원에 있다.
- 강동의 대안까지 이르는 이 성의 길이는 12㎞다. 성이 길어 ‘장성’ 이라고도 불리는 이 성 주위에는 유명 사적지가 많다.
- 범서면 두산리 두산저수지에 있는 야철지와 순금산, 기박산성이 모두 이 성 인근에 있다.
- 관문성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동경잡기』 에 실려있다. 이들 책에는 이 성이 남쪽과 동쪽으로부터 오는 왜병을 막기 위해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쌓은 것으로 되어있다. 기록에는 이 성을 쌓을 때 각간원진이 감독했는데 3만 9천여 명의 인부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 관문성은 남쪽에서 경주로 들어오는 관문의 역할을 한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 현재 관문성은 대부분 퇴락한 상태이고 동쪽 끝에 원형이 남아 있지만 상단이 허물어진 상태다. 축성방법은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가로 40~50㎝, 세로 20~30㎝의 잘 다듬어진 석재를 5~6단으로 쌓고 그 위에 자연석을 쌓은 공볍을 이용했다. 당초 성의 높이는 평균 4~5m가 되었지만 지금은 안쪽 1.1m, 바깥쪽 3.6m로 많이 허물어진 상태다.
- 기록에는 임진왜란 때 이 성에서 의병장과 왜병 사이에 전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선조 26년(1593) 태화강 전투에서 패한 왜병들이 북상하면서 이 성에 주둔했는데 이 때 김흡, 김범 등 울산 의병장들이 이들을 물리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 때문에 관문성은 요즘 들어 청소년들과 시민들에게 소중한 문화유적지가 되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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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산림욕장
- 울산북구 달천동 산167번지 일원에 5ha(15,000여평)으로 8,500본 정도의 편백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 이 곳의 편백나무는 1985년 3월경에 조림되어 자란 나무이다.
- 산림욕장에는 원두막 1개소, 평상 7개소, 피크닉 테이블 11개소, 의자 10개, 숲 해설판 1개소, 산림욕대 6개 등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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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골저수지
- 1933년에 설치되었다. 면적은 30ha, 수심은 4m, 저수량은 4만 8천 톤이다. 현재 생태수면 데크가 설치되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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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산
- 천곡동과 경주 외동읍 중간에 있어 울산과 경주의 경계를 이룬다. 높이는 122m로 일명 순등산, 북신선암이라고도 부른다.
- 순금산의 순(舜)은 중국 상고(上古)시대 임금으로 요임금으로부터 양위를 받은 왕으로 알려져 있다. 순금산은 순임금이 백성을 위해 거문고를 타고 있는 형국이라고 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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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창골못(천곡 낚시터)
- 면적은 20ha이고 수심은 3m, 저수량은 5만 2천여톤이다.
- 이 못은 물이 주위하천에서 들어오지 않고 땅에서 솟아난다.
- 신라시대 관문성을 쌓을 때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판 것이 시초이다.
- 당초 이 저수지는 샘의 형태였으나 1944년 샘을 확장해 저수지로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염포·양정의 주요 지명 및 산
염포·양정의 주요 지명 및 산 - 이름(갓비알, 부채덜겅, 은산, 흰산, 물나는 봉, 큰 갈매봉, 밤나무골, 아랫율동, 양정, 오치골, 참물내기·찬물배기, 도문재, 심청골·신천골, 동축산, 염포산, 불무골), 설명으로 구성
이름 |
설명 |
갓비알 |
갓비알은 양정동 뒷산 오치골에 속한 작은 산의 하나다. 갓이란 햇볕이나 비를 가리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관모를 이르지만 일부 양정동 지역 사람들은 산의 옛말이라고도 해석한다. 비알은 산이나 언덕 따위가 기울어진 상태나 정도를 나타내는 비탈의 경상도 사투리에서 나왔다. 이를 종합하면 이 지역 사람들은 산의 의미로, 혹은 이 산이 갓을 닮았다고 ‘갓비알’이라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 주변에는 새의 공동묘지가 있었다고 한다. |
부채덜겅 |
무룡산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양정동 뒷산에 이른다. 이곳에는 성불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 성불사가 있는 산을 부채덜겅이라 한다. 성불사가 지어지기 전 이미 이곳에는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부채는 여기서 유래한 듯하다. 또한 덜겅이란 큰 바위산이 풍화작용으로 깨어져서 한 골짜기를 메우고 그 아래로 물이 흐르는 곳을 말한다. 따라서 절이 있던 덜겅이란 뜻에서 불채덜겅이라고 명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은산 |
양정과 율동의 중간에 있었던 마을을 땅땅말리이라 하는데 이곳에는 양정힐스테이트1차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이 아파트 뒷산을 은산이라 한다. 산을 파면 흰 흙이 난다고 하여 은산을 흰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
흰산 |
땅땅말리이 뒤헤 있는 산이다. 과거 이곳에서 백토가 출토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물나는 봉 |
양정동 뒷산인 오치골에 있는 여러 봉우리 중 하나다. 찬물배기라고도 한다. 이 봉에서 시원한 물이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큰 갈매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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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골에 있는 여러 봉우리 중 하나로 햇볕에 산등성이가 뚜렷하게 나타난 여름산이라고 한다. 갈매란 거무스름하고 미끈미끈하면서 고운, 흙에 가까운 모래를 나타내는 개흙의 사투리다. 갈매봉이란 지명은 이 봉우리 등성이에 개흙이 많아 햇볕에 반사되면서 멀리서도 뚜렷하게 보였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
밤나무골 |
율동이라고도 한다. 양정동 북쪽으로 효문동과 걸쳐 있는 마을로 예로부터 밤나무가 많았다 한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양정천이 흘러 태화강으로 흘러들어간다. 1970년대 초 양정동에 현대자동차가 들어서면서 양정천은 공장안에서 복개가 된 채로 태화강 하류에 흘러들어가고 있다. 현재 밤나무골 인근에는 효정중학교와 현대자동차출고사무소가 있다. |
아랫율동 |
대다수 울산사람들은 양정의 마을 중 아랫율동은 알아도 율동은 생소하다는 사례가 많다. 그 이유는 양정동을 경유하는 시내버스 정류장 이름에 아랫율동은 있고 율동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율동보다는 아랫율동의 이름이 더 익숙한 것이다.
아랫율동은 율동의 남쪽인 아래쪽 지형을 일컬어 예로부터 불려져 왔다. 율동 위쪽 북쪽은 골짜기들이 이어져 있고 아래쪽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들어서 있는 평지다.
한편 양정동과 염포동을 잇는 시내버스 노선은 성내~염포동~성원상떼빌앞~신전~현대자동차4공장앞~현대자동차정문~양정힐스테이트앞~현대자동차2공장~아랫율동 순이다. |
양정 |
양정(楊亭)을 한자어가 나타내는 그대로 옛날에 버드나무가 많고 만풍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남쪽으로 현대자동차 공장이 들어서 있고 북쪽 편으로 양정마을이 있다. 현 위치로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4공장 문의 주변이다. |
오치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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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동 뒷산 사격장이 있는 곳을 말한다. 현재 행정구역상으로는 지금의 양정동주민센터 주변을 오치골 1~5길로 명명하고 있다. 지금도 양정동 지역의 식당 등에서 유난히 오치골이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오치골은 양정동의 핵심을 이루는 골짜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옛 지명사에는 오치골(烏雉谷)로 되어 있다. 까마귀 오(烏)자와 꿩 치(雉)자를 쓰는데, 치를 까치의 발음 나는대로 까로 해석해 이곳을 까치골로 불렀다는 유래도 있다. 정조 때는 이곳을 까치말(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오치골은 옛 기록에 오치골(五雉谷)로 적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양정동 본토 주민들은 오치골의 치가 숭어 치(?)가 맞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숭어는 치어(?魚)라고도 하는데 숭어과의 바닷물고기를 말한다.
주민들은 또한 오치골은 모치라는 말과도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모치는 숭어의 새끼를 이르는 경남해안지방 사투리다. 즉, 양정동 이태우 씨 등 지역주민들에 따르면 오치골(烏?谷)은 골짜기 아래로 태화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리적인 특성이 있어 숭어가 많이 살았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
참물내기·찬물배기 |
양정동 뒷산 오치골에 있는 계곡이다. 산 계곡 중턱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찬물이 솟는다고 한다. |
도문재 |
심천골 안에 있었던 재의 이름으로 도문재 또는 동문재라고 불렀고 일부 주민들은 돈문재라고도 불렀다. 주변에 예비군 훈련장이 건설되면서 지금은 없어졌다. |
심청골·신천골 |
염포동과 양정동의 경계가 되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심청골(深淸谷)은 신천골이라는 골짜기를 부르면서 발생하는 자음접변 현상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또는 골짜기가 깊고 냇물이 맑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말도 있다. |
동축산 |
신전 뒤에 있는 동축산은 해발 305m로 산 정상에 염포정이 있다. 북구청이 2004년 12월 염포개항을 기념하기 위해 산 정상부근 2000㎡면적에 ‘염포개항 기념공원’을 건립했다. 염포정 앞에는 장승이 세워져 2009년 12월 15일 제막식을 가졌다. 장승은 대장군과 여장군 2기로, 대장군은 지역발전과 생태환경 보존을, 여장군은 풍요롭고 행복한 염포동을 가꿔 달라는 주민염원을 담았다. 산 자락에 동축사가 있으며 산 정상에 올라서면 태화강과 울산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
염포산 |
성내마을 동남쪽에 있는 해발 205.7m 산으로 동구와 북구의 경계를 이룬다. 숲이 울창해 울산이 산업화가 되 후 남쪽 석유화학공단에서 날아오는 대기오염을 정화시켜 주는 역할도 한다. |
불무골 |
신전과 중리의 뒤쪽은 산과 골짜기로 이뤄져 있는데 두 마을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 불무골이다. 골짜기에 절이 없다고 하여 불무골(佛無谷)이라 부른다. |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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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
- 염포정 앞에 대장군과 여장군 2개의 장승이 세워져 있다. 북구청이 2009년 12월 15일 장승제막식을 가졌다.
- 대장군은 지역발전과 생태환경 보존을, 여장군은 풍요롭고 행복한 염포동을 가꿔 달라는 주민 염원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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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생활체육공원
- 2005년 6월 양정동 776-21번지 일대에 총 사업비 31억 5000만원을 들여 2만 6013㎡ 규모로 개장했다.
- 인조잔디 축구장, 인라인 스케이트장, 다목적운동장 등 5종 체육시설을 비롯해 화장실, 관리동, 가로등 부대시설이 갖춰졌다.
- 북구청이 2001년 12월 건립계획을 세워 2002년 10월 공유재산 취득심의, 2003년 12월 보상 완료 등의 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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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골사방댐
- 집중호우시 산에서 토석류 및 산림부산물이 유실되어 인근 하천이나 배수시설이 막혀 물이 범람하여 발생할 수 있는 인명, 재산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2009년 3월 24일 부터 2009년 6월 23일까지 시공하여 저사(貯砂)를 목적으로 상장 26m, 하장 19m, 높이 6m의 규모로 총 공사비 1억9000만원을 들여 설치된 사방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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