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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이 우리 시대에 던져주는 화두
작성자 문○○ 작성일 2006-02-15
조회 767
전봉준이 우리 시대에 던져주는 화두
[연재]조광환 선생님의 \''\''청소년을 위한 동학농민혁명이야기\''\''

조광환 dh1894@hanmail.net

전봉준 처형 당시 집행 총책임자로 있던 강모(姜某)는 말하되, 나는 전봉준이 잡혀 오던 날부터 나중에 형(刑)을 받던 날까지 그의 전후 행동을 잘 살펴보았다. ..... 과연 그는 평지돌출로 일어서서 조선의 민중 운동을 대규모적으로 한 자이니 그는 죽을 때까지라도 그의 뜻을 굴치 아니하고 본심 그대로 태연히 간 자다. 그는 형(刑)을 받을 때 교수대 앞에서 법관이 ?가족에 대하여 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하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한다. ?나를 죽일진대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고가는 사람에게 내 피를 뿌려 주는 것이 마땅하다. 어찌 컴컴한 적굴 속에서 암연히 죽이느냐? 하고 준절히 꾸짖었다 한다.〈오지영의 동학사(東學史)〉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 앞에서 나약해 지기 마련이지만 전봉준은 의연히 자신의 신념인 조선 민중의 자유와 평등, 민족의 자주 평화를 위해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그가 서울로 잡혀 왔을 때에 그는 한 쪽 다리를 다쳤기에 일본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이 때 일제는 일본과 조선이 연합하여 동양 평화를 이룩하고 또 대 연합을 건설하여 서양세력에 맞서 자느니, 일본이 협력으로 조선의 내정개혁 및 봉건적 신분제를 타파하자는 등의 설득을 폈습니다.

\"그대의 죄상은 일본 법률로 따질 것 같으면 상당한 국사범(國事犯)이지만 사형에까지는 이르지 아니할 수도 있으니 그대는 마땅히 일본인 변호사에게 위탁하여 재판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요. 또는 일본 정부의 양해를 얻어 살길을 찾는 것이 좋지 않겠소?\"

그러나 전봉준은 \"너희들은 나의 원수요, 나는 너희들의 원수이니 너희들은 원수이니 나를 죽일 뿐이라. 여러 말 할 것 없다 … 구차한 삶을 위해 살길 을 구하는 것은 내 뜻이 아니다. … 이제 와서 어찌 그런 비열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나는 죽음을 기다린 지 오래다.\" 라며 의연히 거절했습니다.

그가 반 외세 반봉건을 추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민족의 역량과 동력을 토대로 이룩하는 것이지 일본의 힘을 빌려서 성취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민족의 안위와 자존을 위해서는 일본이 우리의 적이며 타도되어야 할 대상임을 그는 결코 잊지 않았고, 일제는 결국 그를 설득하는 작업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전봉준이 사형 당하기 직전 법관이 가족에게 마지막 남길 말이 없느냐고 묻자, \"나는 다른 할말이 없다. 그러나 나를 죽이려면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고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내 피를 뿌려주기 바란다. \" 고 대답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마지막 유언은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 외세를 물리치고자 했던 자신의 뜻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봉준의 진정한 매력은 구국의 신념과 열정 뒤에 있는 인간미입니다.

갑오 년 고부농민봉기를 일으킨 동기에 대하여 진술하기를 \"한 몸의 해를 위해 기포 하는 것이 어찌 남자의 일이라 하겠는가. 중민이 원탄하는 고로 백성을 위해 재해코져 하였다.\" 라고 밝혀 백성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

갑오 년 고부농민봉기로부터 시작한 농민항쟁은 황토현 전투, 황룡강 전투, 전주성 점령에 이어 전라도 삼례의 2차 봉기 후 공주를 공략했으나 관군, 일군의 연합군에게 거듭 패전하였습니다. 이에 전 봉준은 우리 민족이 전 역량을 결집하여 대일 항전에 나서지 못하고 골육상잔을 일삼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일본군과 연합한 관군에게 고시문을 보내 호소하였습니다.

\"기실 조선사람끼리 싸우자는 바가 아니어늘 이와 같이 골육상전하니, 어찌 애닯지 아니하리오......한편으로 생각하면 조선 사람끼리라도 도(道)는 다르지만 척왜와 척화는 그 의가 일반이라. 두어 자 글로 의혹을 풀어 알게 하노니, 각각 돌보고 충군애국의 마음이 있거든 곧 의리로 돌아와서 상의하여, 같이 척왜척화하여 조선으로 왜국이 되지 않게 하고,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대사를 이루게 하올세라.\"

이렇듯 그의 염원은 동족끼리 같이 싸우는 비극에서 벗어나 이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전봉준의 비통한 염원은 오늘날 분단체제에서 비롯된 동북아전쟁의 위협 속에서 우리 민족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할 것입니다.



입력 : 2004년 10월 18일 10:30:06 / 수정 : 2004년 10월 19일 07: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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