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역사 발전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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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문○○ | 작성일 | 2006-02-14 |
| 조회 | 77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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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오는 역사의 불길
[연재]조광환 선생님의 청소년을 위한 동학농민혁명이야기-마지막회 조광환 dh1894@hanmail.net 우리가 그 동안 살펴 본 동학농민혁명은 수십만의 희생자를 낸 채 비록 좌절되었지만 조선후기 농민항쟁을 통해 성장한 농민대중이 스스로 나라의 진정한 주인임을 자각하여 낡은 봉건적 사회질서를 타파하고 자본주의 열강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높이 든 우리 역사상 최대규모의 민중항쟁이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 따라서 동학농민혁명은 한국 근현대사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쳤고, 다음과 같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의 자주근대화를 가로막고 있던 구체제를 붕괴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유사 이래 수천 년 묵어온 반상차별을 중심으로 한 사회신분제도를 폐지하여 인간평등의 새 세상을 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그의 실천을 집강소라는 자치 기구를 통해 현실화시켰습니다. 결국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한 사회신분제의 폐지는 양인 천민의 하위신분 층의 농민들이 동학농민혁명을 통하여 줄기차게 외쳤던 주장으로서 그 후에 갑오개혁을 추진하려는 정부에서 이를 받아서 법령으로 확정지은 것이었습니다. 둘째, 1894년 5월부터 11월까지 약 7개월 간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집강소 통치는 비록 한시적이긴 하지만 우리역사에서 처음으로 민중들의 뜻에 따라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낸 귀중한 경험이었으며 민중에 의한 근대개혁의 지방통치 모형을 제시한 것으로서 오늘날 민주주의 발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셋째,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주화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하여 자주 독립 국가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이 땅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민족자존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동학농민군은 이러한 민족자존을 위해 일제의 침략에 맞서 일어섬으로써 근대 민족운동의 효시가 되었으며 반봉건의 민주화와 반외세의 자주독립이라는 올바른 역사발전의 방향을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넷째, 동학농민혁명에 참가했던 동학농민군들이 1895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일어난 의병의 대열로 합류하여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의병항쟁의 뿌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3?1운동과 독립군 활동으로 이어졌고 그 정신은 우리의 현대사 속에서도 60년대 4?19혁명, 70년대 유신철폐항쟁, 80년 광주민중항쟁, 87년 6월 민주화 항쟁과 90년 이후 민족자주통일운동의 원동력이 되는 등 조국의 민주화와 자주독립정신의 진원지가 되었습니다. 다섯째, 동학농민혁명은 서구열강의 침략에 대한 아시아 민중의 반제국주의 투쟁의 선구적 역할을 함으로써 세계사적 의의가 높아 중국의 태평천국혁명, 인도의 세포이 투쟁과 함께 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한 19세기 아시아의 3대 농민전쟁의 하나라는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 갑오년 이름 없이 스러져간 무명농민군들, 그들이 못다 이룬 미완의 혁명을 이어 완성할 자는 누구인가? 역사의 참된 주체는 누구인가 지금까지 살펴 본 조선 후기 격동의 시대를 지내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겪었던 가슴 아픈 역사적 경험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지나간 역사를 배우려는 까닭은 과거의 사실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과거 역사를 통하여 그 속에서 반성과 교훈을 찾아 현실의 모순과 과제를 올바로 인식하고, 해결함으로써 바람직한 미래를 건설하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의 동일한 역사적 사건이나 현실에 대해서 사람들이 현재 자신이 처한 위치나 상황에 따라 서로 달리 보고 해석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것은 그 사람이 현실에서 차지하는 이익과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이렇듯 동일한 역사 사건을 놓고도 생각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르게 평가하므로 \''역사를 바로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옛 성현들은 역사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자신의 눈앞에 놓인 이익보다는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것을 강조했답니다. 역사는 제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변화 발전합니다. 현재와 과거가 다른 까닭은 그 사이에 이런 변화와 발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바라보는 객체인 동시에 현재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는 역사의 주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역사의 변화 발전을 가로막은 세력은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했던 당시 조선의 지배계급이나 일제 식민 통치 아래 친일파들은 자신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계속 지속시키기 위해 조국과 민중의 입장과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지배계급은 역사의 변화나 발전을 원치 않습니다. 현재 그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이 흔들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역사 발전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역사 발전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자신의 이익과는 무관하게 때로는 손해를 보면서도 옳음(義) 하나로 역사를 변화 발전시키려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역사의 주체인 것입니다. 동학농민군의 지도자였던 전봉준과 함께 희생하신 수많은 동학농민군도 제 자신 한 몸의 이익보다는 민중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스스로가 역사 발전의 주체로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시대를 초월해서 올바른 역사 발전의 주체가 되는 것은 \''민중\''입니다. 민중은 흔히 말하기를 피지배계급으로서의 일반대중을 가리킵니다. 조선 후기 \''민중\''은 전체 백성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을 의미하였지만 오늘날은 자본 등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대부분의 농민, 노동자 같은 광범위한 층을 의미합니다. 지배계급도 때론 스스로를 역사발전의 주체라 생각하고 개혁을 주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민중에 의한 개혁과는 본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비교해 보도록 하지요. 1894년 역사의 전환기에 놓인 조선에서는 두개의 개혁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추진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일제가 조종하는 친일파 정권의 개혁이었고 다른 하나는 동학농민군의 개혁이었습니다. 1894년 6월 21일 새벽 일본은 경복궁을 습격하여 민씨 정권을 몰아내고 김홍집, 김윤식, 김가진, 유길준 등을 앞세워 새로운 친일정권을 수립하였습니다. 이들 친일세력들은 민중을 중심으로 한 제 2차 동학농민혁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홍범 14조\''를 선포하고 사회정치적 개혁을 추진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갑오개혁\''이랍니다. 그러나 개혁을 뒷받침해야 할 민중을 소외시키고 일본에만 의지하려 한 김홍집 친일정권은 결국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드러내었으며, 그것을 꿰뚫어 본 민중의 철저한 외면 속에 일본의 조선침략을 용이하게 해주는 도구로 전락해버려 오히려 올바른 역사 발전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와 달리 개혁의 자주적 주체로 등장한 조선 민중은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역사의 주체로 우뚝 섰고 당시 조국과 민족 앞에 놓인 역사적 과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 위기를 민중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친일개화정권이 지닌 외세 의존적 개혁의 한계를 뛰어 넘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내고자 한 민족 자주적 개혁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보통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에서는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일본의 물리력에 의해 외형적으로 볼 때는 실패한 것으로 보이지만 신분제 타파라는 역사적 과제를 민중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여 향후 올바른 역사 발전의 방향을 제시한 동학농민혁명을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정의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어깨 걸고 나서야 합니다\" 그러나 물질만능주의 개인이나 집단 이기주의에 만연된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 속에서 \''민중\''이 역사발전의 주인공으로 나서는 길은 쉽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먼저 우리 자신이 역사를 변화 발전시키는 주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조차도 어려운 현실입니다. 외세의 압력과 다국적 기업의 독점 자본이 지배하는 분단된 조국의 현실이 백여 년 전의 현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상황인데도 지배 계급은 자신들의 이익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민중들로 하여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도록 환상만을 심어줍니다. 그러면서 언론과 교육을 통해 괜히 사회 변혁의 대열에 합류했다가는 저만 손해라는 생각을 심어줍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오로지 공부만이 지상최고의 과제로 생각하도록, 또는 개인의 출세를 위한 도구로 인식하도록 교육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 민족이 처한 모든 사회 현실에 귀 막고 눈감게 만들어 체제 순응형 인간을 양성하는 잘못된 교육만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잘못된 제도와 세상 탓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보다 못 배우고, 더 어려웠던 시절에 살았던 조선민중들이 시대의 모순을 스스로 힘으로 바꾸려고 분연히 떨쳐 일어섰듯이 올바른 역사를 만들기 위한 대열에 당당히 나서야 하겠지요. 정의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어깨 걸고 나서야 합니다. 그랬을 때 여러분은 진짜 힘 있는 ‘민중’을 만나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 후기 전라북도 부안의 진산인 성황산! 내 어릴적 놀이터였던 이곳 입구에 조선 중기의 여류 시인 매창(梅窓)의 시비가 있다. 난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시비에 적혀있던 시조를 자연스럽게 마치 무슨 주문처럼 흥얼거리곤 하였다. 물론 내용의 의미는 알지 못한 채...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이와 같은 일상의 반복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안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매창과 인연이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대학 1학년 때 교양국어를 배우는데 매창의 이 시조가 교과서에 나왔고 그것을 발견한 순간 원인 모를 반가움마저 일었다. 이 때에 와서야 이 시조가 <가곡원류>란 책에 실려 전한다는 것과, 매창이 그의 정인(情人) 유희경과의 이별을 하고 그 애절한 마음을 담은 이별가란 것을 알았다. 세월이 훌쩍 흘러간 지금 난 우리 아이들이 동학농민혁명을 노래했으면 좋겠다. 파랑새 노래를, 전봉준 유언시를... <끝> 입력 : 2004년 12월 12일 17:09:47 / 수정 : 2004년 12월 13일 09:36: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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