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동안 울산을 지켜 온 흔적을 간직한 길이다. 왜구의 침입을 막아준 '유포석보'와 '박제상발선처', 서로를 지켜주는 암수 귀신 고래등대가 있는 '정자항'등을 보며 나라에 대한 믿음, 사람에 대한 믿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조 전기에 설치한 석보이다. 구릉기슭의 낮은 평지와 계곡을 성내로 심고 그 주위에 돌을 쌓아 만들었으며 병영과 울산, 경주 양진의 병사가 교대로 주둔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이 성의 큰 돌을 사용하여 정자항의 방파제를 만들어 현재는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박제상이 신라 눌지왕의 명으로 왜국으로 떠나기 전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둔 바위이다. 왜국으로 끌려 간 미사흔 왕자를 구하러 가면서 몸은 왜국으로 가지만 영혼만은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 담긴 행도잉었다. 훗날 이 바위로 석보를 만들자 왜국의 침략을 막았다는 설이 전해진다.
울산의 상징인 암수 귀신고래 형상의 등대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풍경이 인상적인 곳이다. 특히 암수 귀신고래등대는 서로 지켜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사랑을 다짐하는 장소로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또한 1년 내내 참가자미를 잡아 올려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으며 정자대게의 맛도 일품이다.
시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순응하는 법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겨울에는 땔감으로 쓰이고 봄이 되면 다시 새잎이 돋아나는 현상을 볼 수 있는 '깔비체험길과 다래길', 고려를 흥하게 한 공으로 하사 받았지만 조선시대 때 환수 당하고 다시 돌려받은 '곽암', 바다에 띄운 물신이 인연을 맺게 해준 '판지항'등을 따라 걸으면 끊임없이 돌고 도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깔비는 솔가리의 경남 방언으로 소나무의 낙엽이란 의미이고, 다래는 낙엽덩굴나무란 뜻으로 깔비체험길과 다래길 모두 낙엽을 밟을 수 있는 한적한 도보길이다.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겨우내 땔감으로 사용할 깔비를 주우러 다녔을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 분들의 어린 시절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미역이 자생하는 바위라 하여 미역바위라 부른다. 고려 태조 왕건이 박윤웅에게 고려를 흥하게 한 공을 인정하여 하사한 바위였으나 조선 영조 때 환수하였다가 미역이 계속 흉쟉이 들자 1구를 다시 내어주었다. 이때 어사 박문수가 '위대한 공은 영원히 썩지 않는다.'는 뜻으로 바위에 '윤웅'이란 두 글자를 새기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바다의 여신이 널빤지 바위가 널브러져 있어 '후'하고 세게 입김을 불었더니 깊고 동그란 구멍이 뚫렸는데, 이곳이 지금의 판지항이다. 여신은 판지항에서 물신을 띄우고 잠이 들었는데, 마을 총각이 그 신을 훔쳐간 것이 인연이 되어 둘이 맺어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판지항에 처녀가 신을 띄우면 그 신을 가져간 총각과 맺어진다는 설이 전해온다.
연인들의 달달한 사랑 이야기가 가득한 길이다. 용왕을 따라 소풍 나온 공주에게 첫눈에 반한 장어 이야기가 전해지는 '제전마을', 장어를 피해 공주를 하늘로 올려 보냈다는 '일심전망대', 하늘로 올라가던 공주를 건져 올린 강쇠가 공주와 인연을 맺은 '옥녀봉'등을 따라 걷다가 마음을 변치 않게 해준다는 '천이궁'에서 쉬어가면서 연인과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용왕이 공주들과 제전마을로 소풍을 나왔는데 장어가 셋째 공주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장어가 용왕을 찾아가 공주와 결혼을 시켜달라고 하자, 용왕은 장어를 괘씸하게 여겨 눈을 멀게 하고 태평양 바다까지 다녀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방파제를 쌓게 하여 장어가 마을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 때문인지 제전마을에서는 실컷 먹고도 남을 정도로 싱싱한 장어가 많이 잡힌다.
용왕은 장어를 피해 셋째 공주인 옹녀를 금줄에 매달린 항아리 안에 넣어 하늘로 올려 보내려고 하였다. 이때 우연히 바다에서 낚시질을 하던 강쇠가 항아리를 건져냈다. 강쇠는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는 옹녀의 이야기를 듣고 선녀들이 내려오는 산봉우리로 함께 오르던 중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이 나타났는데 이곳이 일심전망대이다.
강쇠를 따라 산봉우리에 올라간 옹녀는 그곳에서 약수를 길어가는 선녀를 만나 함께 옹기를 타고 하늘에 올라갈 예정이었다. 그때 맞은편 무룡산 봉우리에서 용이 승천하던 중 입에 물고 있던 여의주를 떨어트려 옹기가 산산조각이 났다. 두 번씩이나 하늘로 올라갈 기회를 놓친 옹녀는 이 봉우리에서 지상의 선녀인 옥녀가 되어 강쇠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쭉 뻗은 산길을 가운데 두고 소나무가 양 옆으로 촘촘하게 서 있는 자세가 복 많은 사람의 천이궁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소나무를 벽으로 삼고 소나무 사이사이에 널찍하게 자리잡은 평상을 침대 삼아 편히 쉬어갈 수 있는 '노천 호텔'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인연을 맺으면 그 마음이 변치 않는다는 속설이 있어서 많은 연인들이 찾는다.
부부의 연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다. 10년이 지나도록 아이 소식이 없던 부부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 '금실정', 부부 못지 않게 소와 연을 맺었던 망이 이야기가 담긴 '우가항', 짝을 찾아 여행을 떠난 까치 이야기가 전해지는 '까치전망대'등을 걷다 보면 부부의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결혼한지 10년이 지나도록 아이 소식이 없는 부부가 매일 아침 언덕에 올라 일출을 보며 기도했는데, 일년 되던 날 부부에게 반가운 소식이 찾아왔다. 그 후에 부부가 기도했던 언덕 위의 소나무 두 그루가 굽기 시작하더니 한 그루로 연결되어 동그란 모양이 되었는데 마치 서로를 위로하는 부부의 모습 같았다. 이곳에 오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고 하여 '금실정'이란 이름이 붙었다.
며칠째 망이는 바다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친구들과 놀고 온 사이 어렸을 때부터 키운 소가 풀을 뜯으려 바다로 나갔다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망이는 소가 바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다에 뛰어 들었는데 그 뒤로 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해 태풍이 심하게 불어 마을 앞이 동그랗게 패였는데 소의 워낭과 닮은 모양이어서 우가항이라 불렀다.
해녀들이 물질을 할 때 쉬는 곳으로 해녀봉 위에 있다. 해녀봉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어느 날 물질을 마친 해녀가 바위에 엎드려 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파도가 덮쳐 정신을 잃었고 이를 본 바위가 해녀를 태우고 우가 앞 바다로 걸어갔다. 육지에서 이 광경을 본 여인이 비명을 지르자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바위는 멈춰버렸는데 이곳이 신발바위이다. 해녀봉은 신발바위 옆에 있다.
까치들이 모여 사는 우가산의 봉우리를 까치봉이라 하는데 이곳에 있는 까치 전망대에서는 하늘과 땅과 바다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까치봉에 사는 까치와 얽혀있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까치 한 마리가 훌륭한 짝을 찾기 위해 하늘과 천둥번개와 연기와 굴뚝과 건축가를 찾아갔지만 결국 까치가 가장 훌륭하다는 것을 개닫고 까치봉에 사는 까치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걸 새삼 알게 해주는 길이다. 노부부의 오랜 정을 알려주는 '500살 된 느티나무', 터키의 축구문화를 접하게 된 '강동축구장',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우가산봉수대', 남녀의 배려를 느끼게 해준 '산해로'등을 보면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일 줄 아는 겸손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
당사마을에는 사이 좋은 노부부가 살았는데 할매의 이야기 솜씨가 워낙 뛰어나 어른아이는 물론 바다 생물과 산짐승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뱀이 용이 되어 승천하게 되면서 할매 이야기를 못 듣게 되자 서운한 마음에 할매를 머리에 태우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할매가 떠난 뒤 할배도 갑자기 사라지고 집 옆에 느티나무만 덩그러니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터키 축구팀이 훈련장소로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축구장으로 바다가 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 잡아 공기가 맑고 상쾌한 게 특징이다. 터키 축구선수들의 친필 사인탑을 포함하여 다양한 축구 조형물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고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길을 걷기도 하고, 연못의 잉어들을 관람하면서 가족 나들이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울산의 마지막 연락지점인 우가산 정상에 있는 봉수대는 남목천의 봉수대로부터 받은 신호를 경주 하서지봉수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봉수대는 옛날의 통신수단으로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불을 피워 신호를 보냈다. 지금은 불을 피웠던 아궁이가 남아있는데 봉수대의 벽을 타고 자라는 담쟁이 덩굴이 빨갛게 단풍이 들면 봉수대에 횃불이 오른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해안길을 보며 산길을 걷는 길로 산과 해안이 나란히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도보길이다. 듣기를 좋아하는 여자와 말이 없느 남자가 산해로를 함께 걸으며 사랑을 확인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이 길은 두 사람이 만나 걸으면 헤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연인들이 많이 걷는 길이기도 하다.
깊이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길이다. 혼자만 생각하던 파도가 다른 이들을 배려하게 했다는 '당사항',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자기수양을 하며 기다렸던 뱀이 용으로 승천한 '용바위', 바다 위를 걸으며 연인과의 추억, 가족간의 사랑을 곱씹을 수 있는 '당사해양낚시공원', 어촌답게 바다와 관련된 벽화부터 당사마을의 전설인 용을 그려 놓은 '당사마을 벽화'를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는 정겨운 느낌의 길이다.
당사마을 앞 바다의 파도가 잔잔한 것은 이야기를 잘 하는 할매 덕분이다. 할매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갖 미물들이 오는데 그 중에는 파도도 있었다. 파도는 성질이 급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분대로 설치다가 마을에 여러번 피해를 입혔다. 그래서 할머니는 큰 바위 하나를 던지고는 파도에게 그 바위를 넘어오지 말고 이야기를 들으라고 하였고, 이후부터는 파도가 넘어오지 않았다.
하늘나라에 큰 뱀과 거북이가 살았는데 뱀이 거북이의 음모에 빠져 크게 다투고 둘 다 쫓겨났다. 뱀은 억울하였지만 커다란 바위 밑에 몸을 숨겼고 거북이는 나쁜 행동을 계속 하였다. 옥황상제가 이 사실을 알고 뱀에게 금비늘 날개옷과 뿔, 발톱, 여의주를 내려 주면서 용으로 승천하라고 명했다. 이때 뱀은 바위를 깨고 무룡산으로 올라가 한바탕 춤을 춘 뒤 승천하였으며, 둘로 갈라진 바위를 사람들은 용바위라 불렀다.
용바위와 넘섬이 이어진 바다 위 산책로로 용 조형물에서는 멋진 사진을 남길 수도 있다. 또한 최근 일출 명소로 떠오르면서 가볍게 산책도 즐기고 낚시도 할 수 있어 많은 관심을 받았다. 다리 중간쯤에 있는 유리다리는 검푸른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고 조개 껍데기에 사랑의 글을 적어 남길 수 있는 '사랑의 조객고리'가 연인들에게 인기다.
작은 어촌인 당사마을은 마을 담벼락마다 벽화가 그려져 있다. 어촌답게 바다와 관련된 벽화부터 당사마을의 전설인 용을 그려놓은 벽화까지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골목골목 아기자기하면서도 정겨운 느낌을 준다.
세상만사 바라는 일이 모두 이루어질 것 같은 길이다. 한적한 전통 농어촌 마을 '금천아름마을'을 지나 깊은 사연이 담겨 있을 것 같은 '누운소나무', 한 노인이 꿈에 나타나 발견할 수 있었다는 '어물동마애여래좌상',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어물천벽화' 등을 걷다보면 긍정적인 마음을 키워 '함 없이 한다'는 의미를 깨닫게 된다.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전통 농어촌마을이다. 이곳은 마을 돌담을 따라 걸으며 마을 곳곳에 있는 조형물들을 감상하다 보면 작은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또한 몽돌 해안 산책로, 우가산 등산로가 가까이 있고 대나무 숲길과 고사목 산책길이 만들어져 있어 산림욕도 즐길 수 있다. 또한 깜깜한 밤에 환하게 불이 켜진 당사항 야경은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옛날부터 누운 채로 자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어쩌다 누웠는지 언제부터 누웠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을 누운 채로 보냈다. 아마도 바닷바람에 소나무 가지가 갈라지면서 가지 하나가 누워버린 터다. 그런데 다른 가지 하나가 누워 버린 가지를 감싸 안은 모습으로 자라, 지나는 사람들을 포근히 품어주는 듯하다.
한 노인이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자꾸 '답답하다, 답답하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꿈에서 깨어나 답답하다고 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찾아가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보니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약사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노인이 밤낮으로 덤불과 나무를 잘라내고 약사불이 숨을 쉴 수 있도록 해 주어, 지금의 어물동마애여래좌상이 탄생할 수 있었다.
어물천 둔치의 벽면과 버스정류장, 창고 벽 등을 보면 예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벽화는 동화 '꽃들에게 희망을'의 내용을 담은 것으로 이곳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쾌적한 환경과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이 벽화는 강동사랑길 6구간인 당사해양낚시공원부터 이어지는데 마을과 관련된 에피소드와 지역문화 등을 소재로 그려졌다.
담당자